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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생-영화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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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Jung Saeng -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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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찟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스릴러,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조그만 섬.  그 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부인들에게 절대 알려질 수도 없고, 알려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김복남이라는 여성은 친인척으로 이루어진 무도의 많지 않은 주민들 중에서 가장 핍박 받고 착취당하는 인물이지만 어린 딸과 함께 언젠가 이곳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며 도움의 손길을 내어줄 듯 보이는 어린 시절 친구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심적으로 많이 매달린다.
그녀가 매달리는 친구 해원 역시 대도시에서의 삶이 녹록하지 않아 고군분투 중인데 비정규직이었던 은행원 일까지 놓게 된 처지에 사고의 증인으로 경찰에 여러 번 불려 다니며 신변의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까지 맞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여러 모로 찌든 삶에서 벗어나고자 옛 추억이 서려 있는 무도로 향한다.
영화는 이 두 여인의 삶을 중심축으로 하여 한 명은 방관자, 또 한 명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방관자를 대표하는 해원의 모든 행동 방식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철저히 무관심하고, 가능하면 비루한 현실과 상황에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기에 하나 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기를 도와준 사람까지 철저히 외면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비정함과 불친절함이 도드라진다.
피해자의 전형인 복남은 원래는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었지만 억눌렸던 울분이 봇물 터지듯 터졌을 때 그녀의 광기는 처절한 복수로 재현된다.  자신의 편에 서지 않았던 사람들, 자신의 고통을 외면했던 사람들,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의 인권을 유린했던 이들을 모두 처단하고 자신의 절박함을 애써 외면했던 친구 해원에게까지 그녀는 복수의 칼을 겨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찬사를 받았던 이유는 “왜 사람들은 그토록 방관적일 수 밖에 없었는지”와 “왜 그녀는 그토록 핍박 받으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생각을 못 했었
는지” 라는 심오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잃어가고 있고, 주어진 환경에 무참히 굴복하며 비굴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들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되돌아 보게 만들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즉, 더불어 함께 행복하고 잘 사는 걸 꿈꾸기 보단 먼저 내 일신의 안녕과 편의를 위해 인간성을 내다버린 사람들이나 무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에 놓여있는 현실에 맹종하면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만들어준 영화이기 때문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해서 주인공 복남이 그저 피해자라고 할 수만 없는 것도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녀가 자신을 핍박했던 이들에게 자신의 억울함과 정당함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그게 여의치 않자 결국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들을 처단하는 그 순간 그녀는 홀로 피해자가 되면서 급기야는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역설적인 승리의 순간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조금은 우습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주 현실적이기도 한 금언 하나가 있는데,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뒀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건 바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인데 하물며 인간이 끝까지 밟히기만 하진 않을 터!  이 말을 잘 새기면 이처럼 피비린내 나고 처참한 복수극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발 불일 일이 없지 않을까 싶고, 더불어 더 이상 약자와 강자라는 세상의 이분법도 무용지물이 되리라 믿어진다.
 
사족으로 평소 스릴러물은 많이 좋아하는 편이지만 피범벅인 호러, 고어 영화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내가 이 영화만큼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끝까지 감상했는데, 그건 먼저 주인공의 심상에 나를 완전히 담가버리면 아무 것도 대수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처연하고도 처절한 상황이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섬과 묘하게 대비되고, 두 여배우의 눈에 띄게 차이 나는 얼굴색 등 미장센의 뛰어난 효과들을 새롭게 발견했기에 가능했던 듯.  그리고 그건 그만큼 이 영화가 섬찟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는 거!
그리고 이번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에 이 영화를 이곳 영화팬들에게 소개된다면 참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해봤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가 판타지아 영화제에 잘 부합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훌륭한 시나리오와 화면, 그리고 연기력 뛰어난 새로운 배우를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기에 말이다.  꼭 그렇게 됐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