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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작소설


#3 검은 마리아

한카타임즈 by  조회 수:358 2015.09.02 09:31




중남미의 식민 역사에서 비롯된 사회 경제적 모순이 그 원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중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모두 카톨릭 국가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중앙집권적 군주제와 봉건제를 바탕으로 무력을 앞세워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지배계급을 형성해 식민통치를 펴면서 민중들을 억압했다. 그 결과 남미 여러 나라는 경제적 수탈의 대상이 됐고 지배자들은 강력한 군대 세력으로 조직됐으며 독재 체제가 구축됐다.
아내의 부모는 엘살바도르를 대표하는 해방신학자였고 정부 당국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박해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 척도를 삼으라는 계시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인간은 실천을 통하여 자신을 초월할 수 있으며 하느님이 주신 자신의 운명의 주인으로서 사회의 비인격적인 구조를 거부하고 반대할 권한이 있다고 하셨다. 인간의 상황은 곧 하느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1계명의 모든 거짓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불의를 받아들이는 어떠한 종교도 섬기지 말라는 의미도 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인간 역사에서 억압받는 자를 위하여 구원자의 소명으로 오셨으므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는 하느님의 칭호는 사실 ‘I will be who I will be’라고 한다. 이 말은 하느님은 바로 인간 안에 거하시며 인간의 마음과 영 안에 발견된다는 의미라고 하셨다. 지난 내전으로 국민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280만이 해외로 이주한 엘살바도르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라는 뜻이다. 역사엔 분명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수도자와 성도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아니 Q는 단순한 수도자가 아닌 수도 사제였으므로 인간으로서의 사랑은 애초 허락되지 않았다. 거기에 그들은 16년 나이차가 있었다. 다니엘의 차가운 눈빛은 그에게 늘 안돼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신비는 초월적이다.. 세상과 일찍 말 섞으며 고단한 삶을 시작해야 했던 그가 마음 깊은 곳에 평생을 가지고 있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것..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심장의 박동이 따뜻해져 옴을 느끼는 그것.. 매분 일초가 모두 선물로 느껴지는 그것.. 사랑은 세상과 우주와 신앙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깊어졌다. 아내는 매일 그를 찾아왔고 이는 원장의 특별지시로 그가 묵언수행을 해야 했던 1년의 수행 기간에도 끊이지 않았다. 많은 봄이 가고 겨울이 왔으며 많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하느님의 보다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예수님의 벗으로 불림을 받은 예수회 회원들의 행동지침이다. 이냐시오 성인의 생가가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 로욜라의 대성당 벽과 성인상 곳곳에 이 모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예수회 회원들은 이곳에서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도모한다. 이 영적 성장을 바탕으로 그들은 가난과 순명, 정결의 전통적 수도생활 양식과 함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명에 의해 신앙의 증거자로 파견되고 있다.
1522년 31세의 이냐시오는 집을 떠나 순례 길에 오른다. 그는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 성 베네딕트회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검은 마리아 성모상을 만난다. 총고해를 한 그는 입고 있던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벗어주고 거친 감자포대로 만든 넝마자루를 걸친다. 이어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는 장검과 단검을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 제단에 봉헌하고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 될 것임을 서약했다. 그는 성모 마리아의 청빈과 겸손, 단순함을 닮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냐시오 영성의 두 기둥인 가난과 겸손의 시작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검은 성모상은 사도행전의 저자 성 루가가 조각한 것으로 베드로 사도가 스페인에 가져왔다고 한다. 검은 성모상은 무어인 지배 때 동굴 속에 감춰져 있다가 880년경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아니 우연한 발견이라고 할 순 없다. 산에 비춘 서광과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인근에서 놀던 4명의 어린이를 동굴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후 12세기 들어 이 수도원에서 성모 발현과 기적이 잇따랐고 검은 성모상은 기적의 성모상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사특하게 타자를 짓밟고 쉬이 규정하고 마는 폭력의 시대에도 순례자들의 방문은 끊이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