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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le 연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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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ple
 연작소설


#1 검은 마리아

한카타임즈 by  조회 수:292 2015.08.12 11:11






남은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이다.

 

어스름 저녁 라신 카날의 한 남자. 벌써 여섯 시간째 홀로 앉아 있다.

아마도 깊은 생각에 빠진 듯 그렇게 한참을 더 앉았다 일어 선다. 손에 작은 편지가 꼭 쥐어져 있다.

 

아빠, 어떻게 여전히 건강하시죠? 오늘은 바르셀로나 항에 정박했어요. 선박점검을 포함하여 일주일 기항예정이에요.... 어제 운항관리보고서를 제출했으니 저도 한동안은 숙제가 없어요.... 아빠가 일하셨던 고딕지구의 카사 마르티에 한번 가보려고 해요.... 몬세라트의 다니엘 수도사님이 아직도 계신지 모르겠네요.... 다녀 와서 다시 편지 드릴께요.... 식사 꼭 챙기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아빠 사랑해요..

 

Q의 딸 로즈마리는 대형 크루즈 선사 소속 선박운항관리사다. 크루즈선에 탑승하여 벌써 수년째 세계일주 중이다. 일년에 한번 아빠를 보러 몬트리올에 들린다. 가장 최근의 방문이 지난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이니 그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Q의 기억이 빠르게 과거로 올라 간다.

 

학습된 육감이 작동했기 때문일까 그는 로즈가 검은 성모상을 보러 가려 한다는 걸 암중 느끼고 있었다. 카사 마르티에서 일하던 시절은 그의 삶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아내와 로즈, 매튜 4가족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피카소가 즐겨 찾던 카페로 유명한 '콰트로 갓츠(4Cats: 네 마리의 고양이)'에서 3년을 메인 쉐프로 일했었다. 19세기말 피아노 음악과 그림이 있는 선술집으로 출발한 이 카페는 이내 바르셀로나의 명물로 부상하여 가우디와 호앙 미로 등 당대의 예술가들이 단골이 된다. 이후 재정난으로 한번 문을 닫기도 했지만 의식있는 몇몇 사업가의 투자로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현재는 지난날의 명성을 오히려 상회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피카소를 만나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Q의 음식 맛에 반하기 일쑤였다. Q가 레스토랑의 출입구를 배경으로 관광객들과 찍은 사진만도 아마 수 천장이 넘을 것이다. 지금도 레스토랑 벽면에는 세계의 유명인사들과 함께 찍은 Q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아내 생각에 가슴이 아려 온다. 절도범을 그대로 보내지 않은 자신이 원망스럽기 그지 없다. 피카소의 소품이라고 해보아야 그저 물건일 뿐이다. 한밤 중 침입자와의 난데없는 격투의 와중에 아내가 다쳤고 침입자는 사망했다. 변호사는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과잉방위로 판결했다. 무기가 없는 상대방에게 쉐프 용 나이프를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2년여 수형생활을 해야 했고 아내는 사건 당일 사고의 후유증으로 그가 없는 병실에서 숨을 거두었다. 큰딸 로즈는 유학 중이었지만 한참 민감할 나이의 매튜가 충격으로 세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유골을 수습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인근 마을, 작은 레스토랑에 취직한 것도 이즈음이다.

 

가능한 시간에 적응하려 애썼다. 마냥 아파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했다. 아내의 병원비로 바르셀로나의 주택은 이미 남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매튜의 치료에도 돈이 들었다. 아픔을 감추고 생업에 열중한다. 로즈가 송금해오는 돈은 그냥 세이빙 어카운트에 넣어 둔다. 레스토랑과 매튜, 레스토랑과 매튜.. 그는 아들을 위해 인생을 최대한 단순화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