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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작소설


#5 미스터 스피로스

한카타임즈 by  조회 수:279 2015.07.29 11:33




다시 이사회장.. 물론 다른 날이다. 이번 이사회는 기획이사와 총무이사의 요청으로 소집되었다. 기획이사는 젊은 레스토랑 창업자들을 밴드화 하여 그들끼리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자신 30대 초반의 젊은 사업가이기도 한 두 이사는 협회가 너무 앞서가 모든 일을 결정하는 바람에 정작 회원들의 의견수렴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완곡하게 지적하였다. 연배가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이는 협회 내부의 공통적인 의견이자 분위기여서 모두들 공감하고 기대를 가지는 순간 회장이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미스터 스피로스는 협회는 일부 회원을 위해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고 모든 회원을 차별 없이 대우하지 않으면 안되므로 일부 회원들로 밴드를 구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다. 총무이사가 반발했다. 총무이사는 협회의 구성이 일률적이지 않은 현실을 들어 서로 공통점을 가지는 일부 회원들로 소집단을 구성하여 그들끼리 소통하게 하면 소속감도 높아지고 활발한 소집단 활동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도 쉽게 수렴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열변을 토했다. 회장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들어 보자고 하자 여기 저기에서 기획이사와 총무이사의 제안을 찬성하는 의견들이 쏟아진다. 회장의 표정이 조금 굳어진다. 미스터 스피로스는 이 건은 지금으로서는 시기상조인 것 같으니 논의를 조금 미루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산회를 선포한다. 참석 이사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회장을 굳게 신뢰하던 그들이다. 그러나 이 일로 약간의 실망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사회 안건 상정, 결정.. 이사회 안건 상정, 산회.. 모두 82번에 걸친 지난 이사회에서 부회장과 이사들의 제안은 대부분 산회로 끝이 났다. 그들이 다수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집행이사회라고는 해도 어떻든 회의체 기관이다. 다수결은 존중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침묵 속에 잠겨 있다. 회장이 바른 사람임은 모두들 잘 알고 있다. 이전의 그 어떤 회장보다 업무에 열심인 것도 안다. 그러나 사무실의 공기가 예전 같지 않다. 한 사람 두 사람 마음들이 먼저 떠나갔다. 회의에 참석은 하지만 기존의 열의는 간데 없다. 건강을, 사업부진을 이유로 이사들이 떠났다. 부모형제가 있는 타주로 사업체를 옮긴 이사도 나타났다. 그리고 지우 클라우디오마저 짧은 한마디를 뒤로 하고 떠난 것이다. 

메릴린은 우연히 인터넷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에서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한다. 사진 속의 인물은 아마도 미이라 상태인 듯 보였고 눈 속에 엎드린 자세였다. 그의 두 팔은 위로 살짝 뻗쳐 있고 두 다리는 발목 위 복합골절을 당한 오른쪽 다리의 고통을 진정시키고자 교차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상의 옷 조각에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 그렇다. 지난 1999년 영국의 BBC 원정대가 발견한 조지 말로리의 시신 사진이다.

그의 시신이 발견된 에베레스트 북벽 8,160 미터 지점은 산악인들에게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워지는 곳이다. 그러나 그는 탈진하여 죽은 것도 앉아서 죽은 것도 아니었다. 사고로 떨어지면서도 제동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추락이 멈춘 후에도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채 한동안 살아 있었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생명의 불꽃이 희미하게 꺼져가는 해발 8000미터 절대고독의 지대에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채로 혼자였다.

그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기 위해 젊은 동료 앤드류 샌디 어빈과 베이스 캠프를 나선 것이 1924년 6월 8일, 개버딘 옷과 밑창에 징을 박은 부츠가 등산장비의 전부였던 그다. 사람들은 힐러리보다 29년 앞서 그가 어쩌면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을 수 있다며 흥분하지만 정작 그에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런지 모른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