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편집자 칼럼

본문시작


  Editor's Column
 편집자 칼럼


고문

by 한카타임즈 조회 수:2245 2012.01.19 11:34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농담이 아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에 잡혀온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사망하자 고문사실을 은폐하려고 한 말이다.
지난 14일, 고 박종철 열사의 추도식이 그가 숨진 남영동 옛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열렸다. 25년만의 일이다. 마침 고 김근태 의장이 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파킨스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감회가 더 했다. 서울대 3학년에 재학중이던 박종철이 공안 당국에 끌려간 것은 전두환 정권 하의 1987년의 일이었다. 함께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의 소재를 캐물으며 경찰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가했고, 그로 인해 박종철이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한 용기 있는 의사의 부검으로 세상에 알려졌고, 그 해 여름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함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어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다. 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을 공포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의 전신) 대의원이 대통령을 선출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요즘 청소년이나 이민 2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한국에 정말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던 권인숙 씨는 성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 통합민주당 대표로 뽑힌 한명숙 전 총리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각목으로 두들겨 맞았었노라고 술회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육체적인 고문은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도 검찰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관행은 남아있다. 조사는 꼭 밤을 새워 같은 내용을 묻고 또 묻고, 무죄가 선고되어도 다시 기소한다. 한명숙 대표가 뇌물을 받아서 안주머니에 넣었다고 발표했다가, 여성의 쟈켓에는 안주머니라는 게 없다는 말에 청탁인이 돈봉투를 의자에 놓았다고 했다가, 돈 줬다는 사람이 진술을 번복했다가를 되풀이하면서 끈질기게 기소를 하던 검찰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곽노현 교육감을 일단 구속해놓고 이미 결정된 교육정책마저 좌지우지하던 것은 누구였나? 


그에 비하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BBK특검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검찰 소환도 아니고 방문조사, 그것도 음식점에서 3시간동안 질문을 했다고 해서 조롱거리가 되었다. BBK특검이 밝혀낸 것은 꼬리곰탕 가격뿐이라는 일갈도 있었다. 그로 인해 BBK 사건은 여전히 의혹투성이로 남아있고 당사자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데 오히려 그 당시 조사를 담당한 야당 국회의원 정봉주가 최근 실형을 선고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면회를 방해하려고 기습이감을 하는 형국을 보면 대한민국은 1980년대로 회귀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