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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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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백을 준다고?’

by 관리자 조회 수:2824 2011.10.06 11:51


언젠가 파마프리에 향수를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샤넬 향수를 하나 골라가지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 하나가 “Do you want a Chanel bag?” 하고 묻는 게 아닌가.

순간 머리속에 올록볼록 반지르르한 까만색 가죽백에 금속 체인과 가죽으로 끈이 달려있고 샤넬 로고가 박힌 그 전형적인 샤넬 백의 이미지가 스윽 지나가면서 ‘75불 짜리 향수 하나 사면서 수천 불짜리 백을 줄 리가 없는데, 이벤트 응모라도 하는 건가? 파마프리는 가방 파는 곳도 아닌데 뭐지? 뭐지?’ 하는 온갖 상상이 파마프리 직원이 매장을 가로질러 가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내 눈 앞에 나타난 건 CHANEL이라고 검정색으로 쓰여진 흰색 종이봉투. 순간 허탈하면서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가 ‘내 영어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종이백도 백이 맞는데 내 미릿속의 이미지에는 bag은 적어도 헝겊이나 가죽으로 된 외출용 ‘가방’이었던 것이다.
때때로 겪는 이런 경험은 자신의 언어실력을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더 많이 듣고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가방’ 달라고 하면 무슨 가방을 달라는 건가 헤매다가 종이백, 그러니까 한국에서 흔히 ‘쇼핑백’이라고 부르는 것을 찾고 있는 걸 알게 된 적도 있다.
집에서는 늘 한국말만 하고 한글로 된 책도 곧잘 읽어서 잘 못 느꼈지만 아이들 머리속의 기본이 되는 언어는 한국어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모어는 어디까지나 한국어고 가장 편안하게 쓰는 언어라고 여긴 건 착각이었다. 평소에는 잘 못 느끼다가 아이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적당하다고도 할 수 없는 단어를 쓸 때면 느끼게 되는 것이다.
빨래는 닦는 게 아니라 빠는 거고, 로션은 넣는 게 아니라 바르는 것이라는 걸 일깨워 줘야 하고, 산수숙제를 봐주려면 불어로 숫자를 얘기를 해줘야 이해가 빠른 것이 당연하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잊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제1언어가 한국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큰 아이는 점점 말할 때마다 ‘엄, 엄’ 소리를 붙이기 시작했다. 영어수업이많아지자 영어와 불어를 섞어 쓰는 일도 늘어났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3개국어를 동시에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라면 반드시 필요한 덕목, 참을성과 들어주기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