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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의 Bagdad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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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Seymour Hoffman 죽다.

by 한카타임즈 조회 수:1176 2014.02.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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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Seymour Hoffman이 죽었다. 약물 과다복용이란다. 난 약물 과다복용이라는 말보다 죽었다는 말만 보였다. 어떻게 죽었던 그 사람은 죽었고 앞으로 ‘그 사람이 살아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이 실제 그가 했을 연기를 대신할 것이다. 그 상상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나의 미래보다 더 답답하게 다가오므로 연기자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든 그들을 잃은 상실감은 생각보다 깊이 자리해서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 River Phoenix가 죽고 나서 그의 영화를 곱씹으며 이 사람이 살아 있었으면 멋지게 늙었을까? Catherine Hepburn이 살아 있었으면 혹 멋진 할아버지 만나 결혼했을까? 라며 혼자 별의 별 상상을 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면 Philip Seymour Hoffman은 어떤 상상을 하게 될까? 멋진 영화를 보면서 ‘이 역을 Philip이 했으면 더 잘했을까?’라는 상상을 할까? 그는 주로 어떤 영화에 어떤 역을 맡았지? 영화 리스트를 보니 아는 영화 모르는 영화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에 나왔다는데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봤지만 전혀 기억에 없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Charlie를 괴롭히던(?), 협박했던(?) 친구 중 한 명인 것 같다. <When a man loves a woman>에 나왔다는데 이것도 전혀 기억이… <Twister>에도 나왔는데 이것도 전혀 기억이…잠깐 사진을 보니 주인공이 데리고 다니던 연구원 중 한 명이었던 게 기억이 난다. <Boogie Nights>, <The Big Lebowski>, <Magnolia>, <The talented Mr. Ripley>, <Cold Mountain> 이 많은 영화들을 다 보았건만 그가 이렇게 흔적도 없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그가 나온 영화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Patch Adams>에서 Robin Williams의 경쟁자이자 친구였던 같은 의학도 Mitch역과 <Mission Impossible 3>에서 Tom Cruise를 눈빛 하나로 간단히 제압해 버리던 나쁜 악당 Owen Davian 그리고 마지막으로 <Doubt>의 Flynn신부님. 첫 번째 영화는 정말 조연이라 하기에도 좀 민망한 역이고 두 번째 영화는 조연급 악당이고 세 번째 영화는 주인공에 버금가는 조연이다. 그는 주연을 한 적이 많지 않다. <Capote>를 하기 전에는 그가 주연을 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이 <Capote>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쥔다. 그럼 그가 주연을 한 적이 거의 없어서 기억을 못하는 걸까? 아닌데, 위에 있는 세 편의 영화도 주연이 아닌데 기억하는 걸 보면 위의 영화랑 나머지 영화가 뭔가 다른 점이 있나?
그를 영화에서 만나면 그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맡은 캐릭터만 보인다. 그 캐릭터가 너무 잘 들여다 보인다. 그런데 그가 맡는 역할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거나 악하거나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특이하거나 보수적일 때도 있고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가 만들어 내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를 미워한다든지 못되먹었다고 욕을 한다든지 ‘야비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같은 멘트를 날리고 있다. 그가 나온 영화에서 그의 역할을 다 기억하진 못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를 보고 어떻게 반응했었는가는 기억이 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그는 그냥 그 캐릭터 자체인 것이다.
<Patch Adams>에서 Patch Adams(Robin Williams)가 병원 규율을 어기고 환자들과 어울릴 때마다 Mitch(Philip Seymour Hoffman)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싫어하며 못되게 군다. 남들이 다 Patch에 동화되어 그를 동경할 때도 끝까지 자존심 지키며 그와 적대시하는 이가 Mitch다. 그래서 그 영화가 더 재미있었다. 그런 캐릭터가 있어서 균형이 맞아 떨어졌다. <여인의 향기>에서도 그랬다. 부모 뒷배경을 믿고 주인공 Charlie를 협박하던 친구 중 한 명이 바로 Philip 이 맡은 역이었다. 마지막에 Frank가 Charlie를 대변하면서 전세가 기울어 나쁜 친구들의 위상이 바닥이 떨어지자 Philip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움직이는 장면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아주 잠깐만 나오기 때문에 (그가 나왔었는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하지만 그가 짓던 표정은 그 캐릭터의 감정이 100% 나타나는 그런 표정이었다.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심정을 잘 드러내는 표정을 그는 만들어낼 줄 아는 재주를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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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bt>에서 Meryl Streep이 수녀님으로 나오고 Philip Seymour Hoffman 이 신부님으로 나오는데Meryl을 대적해내는 Philip은 20년 나이 차이에 경력 차이를 거뜬히 넘어선다. 신부님을 의심하는 수녀님 때문에 결국 신부님은 자리를 내어놓고 떠나고 남은 수녀님은 자신의 의심을 ‘의심’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두 사람의 대결구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한 쪽으로 기울어 영화의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Philip의 무게감 존재감 하나로 영화는 완벽한 균형 속에 멋지게 탄생한다.
처음에는 비열한 역이나 악한 역 등으로 만나니까 그를 싫어했지만 영화를 거듭 보면 볼수록 작은 역인데도 불구하고 아주 인상 깊어 영화에서 그를 발견할 때마다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 때서야 그를 인정하게 된다. 그를 인정한 지 불과 몇 년 안 되었는데 그를 잃었다. 나한테는 슬픈 일이고 영화계에는 안타까운 일이다. 돌아가신 분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끝낸다.